2013년 7월 7일 일요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책이 나오기 전 높게 책정 될 인세 관련 된 뉴스를 통해 그의 신작을 확인했던 것 같다


95년 여름 쯤이었던가

군복무 중이었고 상병 정기 휴가 중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인

종로서적에서 무라카미 하루끼란 이름을 처음 보았다


내 기억으론 그전까지 국내에서 일본 작가의 소설을 본다는 것은

대망같은 고전이 아닌 이상 쉽게 찾아 볼 순 없었다

물론 내 독서량이나 범위가 좁았던 탓도 있겠지만

문뜩 생각나는 건 뜨거운 손수건 시리즈로 아는 사람은 아는

유명 에로소설도 있긴 했지만 -.-

지금처럼 손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지금도 아직까지 여러 분야가 그러하긴 하지만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가

문화적으로 봤을 때 해적판이 아닌 경우에는 다 방면에서 막혀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당시 유명세를 떨치던 상실의 시대와 같은 작품으로

비틀즈의 곡 제목을 그대로 직역한 노르웨이의 숲에 대한 정보는
(노르웨이산 가구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전무한 상태에서 종로서적 어느 층엔가 자리 잡고 있던

일본 소설 특별전 뭐 이런 류의 코너에서 발견한 상실의 시대와

노르웨이의 숲 두 책 모두 같은 작품이지만 다른 번역자의 책을 두고

지딴에는 원제에(?) 충실한 노르웨이의 숲을 집어 들었고

하필 펼쳐든 페이지에는 미도리가 주인공 대신 자위행위를 해주는

부분이었다


(난) 군인이었다


이거다 싶은 마음에 집어들었던 책을 통해 18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작품 발간 소식을 듣게 되면 가급적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본 작품을 단순하게 정리해 보면

유복한 집안의 아들인 주인공이 오래 전 일방적으로 당한 절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자 핀란드까지 갔다가 연애상담을 하고 오는 이야기이다 -.-


그리고 작가는 뚜렷한 결말을 들려주지 않는다


세상에는 수 많은 소설들이 있고

수 많은 문체와 스토리 그리고 작가들만의 어떤 기법(?)들이 있다

그러나 그건 작가의 문제라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 특별히 국어란 과목을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어떤 작품의 어떤 문장 혹은 나열한 단어들이 무어를 상징하는 지

외우는 걸 꽤 싫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학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는 거니까

진지한 독자는 철학적 사고를 할 수도 있는 거고

나처럼 가벼운 독자는 재미만 있으면 장땡이고 야한 묘사가 있으면

금상첨 화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몇몇 리뷰에서처럼 본 것처럼 그냥 하루키 스타일의 작품이란 부분은

동감하면서 그래서 볼 것이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고 싶진 않다

그건 독자 개인이 판단할 문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말할 권리도 있다 책을 본 거라면)


개인적으로는 책을 즐기는데 있어 또 다른 취미인
(요샌 사람들이 이걸 취미라 잘 생각지 않지만)

음악 듣기와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평소 좋아 하던 밴드가 어느 순간 트랜드를 반영한답시고

자신들의 개성을 버리는 모습을 상당히 싫어 하는 입장에서

이 작품이 역대 최고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의 개성은 충분히 즐길 수 있었고 그거만 난 만족했다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