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9일 월요일

What A Wonderful World

루이 암스트롱을 모른다 하더라도
혹시나 What A wonderful World란 곡 제목을 모른다 하더라도
실제로 곡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곡일 거라 생각한다
(모르겠다 최근 세대에겐)

열열한 재즈팬이 아니더라도 이 곡을 알고 있다면
곡이 나오는 순간 그 위치가 술집이라면 술 한모금 홀짝여 보지 않았을까
퇴근 버스 안 라디오였다면 지친 몸 쉬로 가는 길에 잠시 눈을 감고
음미해 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이 곡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경우는
굿 모닝 베트남이란 영화에 삽입된 장면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 가사와
대치되는 베트남 전의 참혹한 장면들이 화면을 흐를 때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배웠던 역설법을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곡자체로도 명곡이지만
그 곡이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배운 순간 중 하나였다

최근 들어 사회 돌아 가는 걸 보니 문득 이 곡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는 굿 모닝 베트남이란 영화에 BGM으로 나오던
그 장면들이 떠올랐다 말하는 것이 정확한 것 같다

지구 상에 공산주의(대 다수가 실상은 독재지만)가 남아 있는
국가도 한 손에 꼽는 시대에 (셀 나라가 몇이나 되는지)
되도 않는 종북논리를 펼치면 돈 몇푼과 권력욕에 선동질하는
사람들이나 (차라리 돈 받고 하는 놈들은 났다)
진짜 빨갱이가 득실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이 다 죽을 때까지 이 나라는 변할 수 없겠구나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특히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 또한)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날을 많이도 세웠다
그러나 잊지 말고 반성해야 한다
저런 정부와 대통령을 만들어 낸 우리 스스로에게 따끔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 죄없는 어린 학생들 그리고 은근히 소외된 다른 희생자들
무능한 정부 연기력 높이기에만 힘쓴 대통령 뿐만 아니라
그런 정부와 대통령을 만들어 낸 우리의 이기심을 질책해야 한다

야당이 정권 잡으면 우리 지역 땅값 떨어진다더라
야당이 정권 잡으면 법인세도 오르고 세금 폭탄 맞는다더라
(니들이 걱정할 세금이 아니다)
무상 급식하면 부자 애들한테까지 밥을 줘야 하는데
그게 말이 되냐 (왜 안 되냐? 그애 부모가 세금을 더 많이 내는데)
여당이 정권 잡으면 부자들 세금 낮춰 준다더라
여당이 정권 잡으면 노인들 몇 십만원 씩 준다더라
기타 등등....
어짜피 선거란 것이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따져 보고
지지하는 것은 맞다
그리고 야당이 다 맞고 여당은 다 틀렸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요새 야당 하는 짓 보면 여당 새끼들 보다 더 미우니까)

한 때 그리고 지금도 우리 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탑 클래스 중 하나이다
사실인지 우스개 소리인지 북미 이민자 사회에까지
학원문화가 열풍이란 뉴스도 언젠가 본 거 같다
(대다수가 좀 나 나은 생활하려고 좋은 환경에서 애들 키우려고
이민가서 잘하고 산다)
표현의 방법이 정상적이지 못해서 그렇지
다 자식 사랑하니까 부모들이 스팀팩 맞고 그런거라 이해한다
그 자식 사랑을 선거 때 좀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내 자식이 어떤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지
내 자식이 어떤 세상에서 돈에 찌들지 않고 사람답게 살 수 있을지
당장 내가 큰 이익을 남겨 자식에게 물려 줄 생각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나라에서 자식이 평생 호위호식할 수 있는 부를
남겨 줄 부모가 몇이나 되겠냐 말이다

얼마 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별화 하겠다는 뉴스를 봤다
한 숨만 나온다
소위 말하는 복지 선진국에선 계급을 없애려 부단히 노력을 하는 판에
이 나라에선 계급을 못 나눠서 안달인 것 같다
그리고 분명 얼씨구나 하는 사람들 나온다
당장 자신의 이익과 직결이 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란 노동의 착취를 막고 최소한의 생활 안정을
보장하는 제도인데
이게 오늘 날에는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이익 활동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지표로 변질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 경기가 어려운 점 특히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과연 이게 최저임금이 턱 없이 높아서 그런 것일까?
수출만이 나라 경제를 성장 시킨다는 70년대 사고방식 때문이란 거
언제 쯤이면 깨닫게 될런지
기업이 이윤을 많이 남겨야 경제가 성장 한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이윤이 사회에서 얼마나
순환이 되는지는 생각지 못한다

제발 이 땅에 살면서
자기가 사는 동네 땅값 아파트값 오르기를 바라는
그리고 그거라도 좀 올라서 내 노후
또는 내 새끼 주고 싶은 사람들은
당장의 이익(정말로 돌아 오는지도 모르겠지만)이 나의 노후
또는 내 새끼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 좀 하고 살자
(니들 다 재벌이야?)


2014년 2월 6일 목요일

링크는 링크를 타고

 인터넷에서 무언갈 검색하다가 (이상한 건 아니었다 -.-)

우연찬게 내 트윗 아이디를 발견하고 링크에 링크를 타고 나름 신기하다며
구경을 하다가 걸그룹 선정성 관련 기사까지 가게 되었다



이 새퀴들이 허락도 없이 인용하고 XX이여

2014년 2월 3일 월요일

ripping logs #14

 연휴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은 에릭 클랩튼의 라이브 앨범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라이브 앨범은 1975년에 발표한
E.C. Was Here, 1980년에 발표한 Just One Night 두장이다
(소장하고 있는 라이브 앨범 수가 미비한 관계로)

Eric Clapton - E.C. Was Here 

Eric Clapton - Just One Night





























































1997년 역사적이라 표현하는 에릭 클랩튼의 첫 내한공연 때는 복학했던 해였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복학 직후 학업보다는 술업에 더욱 매진하던 때였다
공연비는 고사하고 밥먹듯이 외상술을 먹던 때라 경제적으로 매우
쪼들리던 시절 그러나 희안하게 지금보다 술은 더욱 풍족하게
먹기도 했던... 어찌 되었던 외국 뮤지션의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사치와 같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두 번째 내한 공연 소식을 들었을 때
첫 공연을 놓친 나로선 포기할 수 없었던 공연이었고
서둘러 예매도 하고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공연을 보게 되었다

당시 기분은 그를 내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피부로
그와 밴드가 만들어 낸 음파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매우
감개무량한 것이었지만 가슴 한켠은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이 남아 있었다

내 기억으론 당시 에릭 클랩튼과 함께 기타 파트를 이루었던 멤버가
세션, 프로듀싱 및 자신의 음악활동 등 전방위적으로 활약하던
도일 브램홀 2세, (한참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드러머 부치 트럭스의 조카이면서 10대 시절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멤버가
되기도 했던 각광받는 슬라이드 기타 연주가 뛰어난 데렉 트럭스였다
(현재 그는 역시 뮤지션인 9살 연상의 아내와 함께 밴드 활동 중)
에릭 클랩튼에 비해 적어도 한두(?) 연배 정도 차이가 나는
젊은 기타리스트들과 멤버를 이루다 보니 공연 자체는
활기가 넘치고 연주에서도 활력과 파워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난 그 부분에서 만족할 수 없었던 거 같다

크림 시절보다 솔로 시절의 그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겉으로 확연히 들어 나는 연주들 보다 내면으로 사그라드는
평범한듯 하지만 미묘한 늬앙스를 전달해 주는 그의 기타 연주에
대한 기대가 더 컸던 탓이었던 거 같다

한 때 나의 블루스 교본과 같던 Double Trouble이 담겨 있는
Just One Night, 왠지 함량 미달인 듯한 라이브 앨범인 것 같지만
들으면 들을 수록 맛이 나는 E.C. Was Here는
세월과는 무관한 나의 애장 라이브 앨범들이다

2014년 1월 17일 금요일

ripping logs #13

어제던가 제프 벡의 2014.04.27 공연예매를 곧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이것 저것 찾아 보다가 문득 이승환이 떠 올랐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2010년이던가
국내 최초의 제프 벡 공연 성사에 있어서 그의 역할이 상당했었다는 후문
만약 이승환이란 뮤지션이 제프 벡을 전혀 몰랐거나(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제프 벡을 만나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컸다 생각한다

이승환에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가 우리 대중 음악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하기 전에
제프 벡을 볼 수 있었던 그 점이 우선(?) 매우 고맙다


이승환 - Dreamizer
































앞에서 치고 지나갔던 잡담이 왠지 그의 그간 활동을 비아냥 거린 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그럴 의도는 없었다
제프 벡 팬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이승환은 본인이 고1이던 때 1989년 데뷔 앨범의 출발부터
대박을 쳤던 90년대 최고의 스타 중 하나였음에 이견을 달 수 없을 거다

가요를 많이 듣던 시절이 아니어서 정확하진 않을지 모르겠지만
부활을 뛰쳐 나와 88년인가 솔로로 데뷔하여 큰 인기를 쌓아 가다
마약 사건으로 연루가 되어 잡혀가고 90년도 컴백했다가
(당시 불륜 유망주 육성을 위한 노래 같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진짜 지겨울 정도였다 -.- 메탈 키드 시절이라....)
재범으로 -.- 다시 잡혀 가지 않았다면 90년대 초반은 이승철, 이승환, 신승훈의
트로이카 체제가 만들어 졌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91년 서태지와 아이들 출현으로 인해 이승철이 건재했다해도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 나진 않았겠지만

그러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젊은 층을 씹어 먹는 시대였다 하더라도
(물론 나도 당시 20대긴 하지만 AC/DC의 Back In Black 리프를
차용했던 곡 외에는 별 관심도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승환, 신승훈의 팬층은 매우 굳건하여 앨범을 내면 몇 십만장
팔아 먹는 건 일도 아니긴 했다

어찌 되었던 이승환은 분명 우리 대중 음악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은 분명하지만 그의 활동 기간 동안 음악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행사 했는지는 솔직히 미지수이다(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러나 당시 앨범 작업 시 사운드 질적 향상을 그 만큼 신경 쓴
뮤지션은 찾아 보기 힘들다
이 부분에서 서태지를 언급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승환을 더 쳐주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언급해 보자면 바로 공연이다
지금은 공연하면 많은 사람들이 김장훈을 떠 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의 공연을 직접 본적은 없어 이런 말이 좀 우습기도 하지만
발표했던 라이브 앨범이나 공연의 몇몇 클립만 보아도
라이브형 가수라 인정할 만 하다
간혹 가창력이 도마 위에 오르곤 했지만 그 유명했던
프레디 머큐리도 공연 내내 완벽하진 못했다 (물론 이 분도 비디오만 -.-)

잡설이 너무 길어 졌는데
제프 벡 때문에 이승환이 잠시 떠 올랐다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거 같다

본 앨범에 대해 짧막하게 하고 넘어 가자면
그의 커리어 중 10집에 해당하는 앨범으로 9집 발표하고 더 이상 앨범을
내지 않겠다는 현 음악 시장에 대한 토로를 깨고 발표했던
앨범으로 전형적인 이승환의 앨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사운드에 대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본작의 수록 곡 중 Dear Son이란 낭만 꼰대 송이 하나 있다 -.-
개인적으로 본작에서 가장 좋아 곡인데
사춘기 쯤 접어든 아들을 앉혀 두고 막걸리 한 사발 거나해진
아버지가 약해진 자신을 가리고 위해 점잔게 폼 좀 잡고 할 만한
70, 80년대스러운 대사를 가지고 있는 곡이다
이런 방화같은 신파를 이승환이 하면 맛이 난다
이 곡은 왜 내가 이승환을 좋아 하는 지 간적접으로 설명을 해주는듯 하다

뭐 그렇다 -.-

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변호인

 연말에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는 사실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빌 나이가 출연 한다는 게 이유였다
제법 히트작이 많은 감독이지만 개인적으로 리차드 커티스 감독을
좋아 한다면 이건 거짓말이 될 것 같다
그의 여러 유명 영화를 보긴 했지만 늘 선택의 순간에 있어서는
타인의 선택 또는 개인적 배우의 기호가 작용 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관객이 많은 시간대에 홀로 보는 영화는 과거에 좀 뻘쭘한
기억이 있던 관계로 늦은 시간대를 가끔 이용해 왔는데
왠지 모르게 연말에 크리스마스 시즌 때문인지 커플 영화라는 인식으로
인해 늘 예매자 수가 짝수인지 신경쓰는 어설픈 소심함으로 인해
망설이다 변호인의 개봉이 시작되었고 결국 변호인을 먼저 보았다


스스로 좋아한다고 애써 말하는 록음악에 있어서도 음악 외적인
감정만을 늘어 놓는 입장에서 영화가 어쩌네 저쩌네 하는 이야긴
좀 남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언가 끄적여 보고 싶은 맘이 드는 걸
보니 나름 인상에 남았던 거 같다

만약 이 영화를 송강호가 아닌 다른 이가 맡았다면 어땠을까
영화를 본 이후로는 송강호가 아닌 다른 이를 상상하는 건
어려워졌다

내가 봤던 최고의 송강호는 그를 처음 본 넘버 쓰리였고 최악은 쉬리였다
반듯함보단 무언가 결함이 있는 케릭터를 연기했을 때
본연의 힘이 나오는 배우란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영화 속의 송강호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노무현이 부를 누리던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게
된 부림 사건을 변호하기 전과 후를 다루고 있다
영화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영화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땐
뛰어 나다고 말하긴 힘들다 (지식도 없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남김을 주는 영화가 있는데
대다수가 배우의 파워로 이끌어 가는 영화들이었다

송강호 또한 배우가 어떻게 영화를 이끌어 가는 지
보여 주었고 이 영화는 그의 필모어그라피에 그런 영화로 우뚝 남게 될 것 같다

수 많은 영화에 법정이 등장해 왔지만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학창 시절에나 한번 들어 봤을 만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호, 정체, 주권을 정의한 헌법 제 1조의 2항 (1항이야 뭐 다들 아는 거니)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오래 동안 가슴에서 메아리 칠 거 같다

송강호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흡족한 영화이지만
딱 한가지만 흠을 잡아 보자면 왜 노무현을 노무현이라 말하지 못하는 가
진짜 이게 현실이란 말인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절과 지금의 차이는 무어라 말인가)
이게 내 유일한 불만이다

2013년 12월 14일 토요일

ripping logs #12

최근 들국화의 재결성(?) 앨범이 나와 화재가 되는 거 같아
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분은 좋지만 (주찬권씨의 죽음이 더더욱 아프게 느껴진다)
레전드 마케팅을(이런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펼치며
납득하기 우습고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인물의 인터뷰를 통해 들국화를
홍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배알이 좀 뒤틀렸다

이런 류의 홍보는 외국 음악 시장에서도 자주 보는 모습 중 하나지만
그래도 나름 그 바닥은 납득이 되는 인물의 인터뷰를 따는 편이다
그만큼 우리 시장과 인프라의 얄팍함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듯 하다

그 딴 인물들을 내세우는 현실을 한편으론 공감하지만
들국화에 환호하며 청년기를 보냈던 형님 누님 세대들이나
나처럼 거의 끝물을 맛봤던 세대들 중 그 누군가는 좀 서글프지 않았을까?

그냥 최근 음악 관련 소외를.......
정치도 사회도 개판인 요즘 배부른 소리하고 있는 거 겠지만......

Rory Gallagher - Live In Europe

록음악 좋아하는 사람치고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한명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선호하는 장르, 기호 등의 이유로 조금 더
각별한 인물이 있을 것 같다
나의 경우는 10대 시절부터 좋아 했던 록음악계의 수 많은 기타리트스 중
역사적 의미와 실력을 떠나 각별히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들의 다수가
60, 70년대에 몰려 있는 편이다

거창한 인물로 자라지는 못했지만
내 인생을 바꾼 결정적 한 사람을 꼽자면 입 버릇이 되어 버린
앨빈 리를 꼽고 싶다
그리고 그에 대한 애정에 버금가는 한 명을 더 꼽자면
로리 갤러거를 추가하고 싶 다
(뭐 이 두명만 있겠냐만은 그 시절의 충격과 내 숨겨진 내면 -.- 을
이끌어준 기억은 오래 가는 법이니까)

같은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한 블루스록 뮤지션을 본다면
하드록에서 전향한 게리 무어를 많이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블루스록 뮤지션은
역시나 로리 갤러거를 선택해 줘야 할 거 같다

간이식 수술후 합병증으로 사망한 록커답지 않은 죽음으로
오래 전 세상을 떠났지만 구독하는 페이스북에서 간혹 올라오는
유튜브 영상을 볼 때나 그의 상징이기도 한 낡은 스트라토캐스터를
볼 때면 그의 투박한 블루스에 대한 열정
앰프와 기타만 있으면 마을 축제 공연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단편적인 일화가 (본적도 없지만) 생각나면서 간혹 찡해진다

P.S. 블루스록 그리고 로리 갤러거에 관심이 있다면 본작과 Irish Tour 앨범은 꼭 들어 보시길

2013년 11월 23일 토요일

ripping logs #11

지인의 부탁으로 리핑을 하다가 문득 블로그가 생각이 났다
글을 쓴다기 보다는 그날 그날의 낙서를 한다는 기분으로 하는
노는 곳이지만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기분을 느꼈다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Jeff Beck - Beckology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제프 벡의 내한 공연을 본지가 매우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리핑도 했겠다 오랜만에 첫 번째 시디를 듣고 있는 중인데
그의 60년대 활동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야드버즈 시절의 올드 스타일이
집중적으로 배치 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본 박스는 달랑 시디 3장에 55곡이 수록되어 있다
박스 제목으로 학문(론)을 의미하는 접미사를 붙여논 것 치곤
제프 벡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을 보여 주고 있 다

그래도 두 가지 장점을 꼽아 보자면
첫 째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활동을 시대 순으로 꼭 있어야 할 곡들로(?)
잘 정리를 해 논 점 (뭐 빠진 것도 많기는 하다)
두 번째로 오래 된 앨범을 듣기 위해 오랜 시간을 두고
찾아야 하는 수고를 그나마 대신해 준다는 점이다
(나처럼 정리와 담을 쌓은 사람에겐 -.-b)

제프 벡 입문학(?)으로 적당한 박스가 아닐지

기약없는 그의 두번 째 내한 공연을 기대해 본다
(일본 공연 가는 김에 들렸다 가는 공연이라도 좋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