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일 수요일

ripping logs #5


 어느 덧 2013년하고도 3일 째가 되었다
작심삼일이라고 모든 이의 결심과 계획의 첫 위기의 날인지도 모르겠으나
방학 숙제를 제외하곤 새해라고 해서 무언가 계획하고 살아 본 적이 없어서
때론 왜 그리도 유난을 떨며 살까하는 건방진 생각만 잠시 해본다 -.-
(지 게으른 건 생각을 안해요)

어찌되었던 모든 이가 이루려고 하는 바 잘 되길 바랄뿐이고
나를 포함한 게으른 자들의 안녕을 빈다



Stevie Wonder - I Was Made To Love Her

내가 스티브 원더란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국민학교 6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큰집이기도 한 사촌형네가 가까운 탓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번갈아 건강이 좋지 않으셔 큰집에서 살다시피도 하였지만
사촌형과 나는 학년도 1년 차이에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는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어 자연스럽게 선후배 관계가 성립된 터라
같이 지낸 시간이 많았다

어찌되었던 형은 중학생이 되었고 난 국민학교의 끝자락에 있을 때
그 당시는 그게 무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소위 말하는 문화의 차이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중 가장 컸던 것은 어느 날부터 영어로 된 노래를 듣는 것이었다
마이클 잭슨같은 건 워낙 유명했기에 그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당시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음악 시간이 거의 전부였던 내게는
그건 왠지 어른스럽다는 느낌을 주었다 생각된다
아마도 그 느낌이 현재까지 이어져온 록을 포함한 팝음악을
주로 듣게 된 동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스티비 원더는 비틀즈와 함께 처음 알게 되었다
비틀즈의 Hey Jude, Let It Be 그리고 스티비 원더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형의 워크맨을 통해 가장 많이 들었고 나름 그 3곡을 메들리로 만들어
지 멋대로 부르며 놀던 부끄러운 기억도 생각나곤 한다

팝의 마스터라고까지 불리우는 시각 장애인 스티비 원더가 보여 주었던
재능이야 자료를 찾아 붙이고 편집하면 시리즈로 해도 제법 길게 갈
이야기이지만 그의 뛰어난 재능 중 가장 뛰어난 걸 뽑아 보자면
역시 보컬이다
본작은 1950년생인 그가 1967년에 발표한 앨범으로 아직 10대이자
훗날 팝의 마스터로 불릴만한 요소가 나타나기 전의 앨범이지만
그의 티없는(쓸데 없는 기교를 배재한) 보컬 능력을 충분히 접할 수 있다
조관우씨의 부친이 스티비 원더의 노래를 듣고 어딘가 몸이 성하지
않을 거라 말한 유명한 일화도 있지만 뛰어난 보컬이란 건
넓은 음역대와 초절정 기교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Otis Rush - Right Place, Wrong Time

과거 평론가들의 오버성 글들을 재미 삼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상업적 이유던 자신의 평론이나 소개를 어필하기 위한 이유던 간에
그 분들의 글들은 분명 나를 포함한 당시의 많은 애호가들의
중요한 정보매체였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처럼 검색만 하면 수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외국의 여러 매채를 수집하여 만들어낸 정보들은 귀한 텍스트였다
그리고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그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평론가들이
각기 달랐을 거 같다

개인적으로 관심있게 보던 평론가 중 오모씨가 있었다
이분의 오버도 전에 언급했던 분들에 비해 결코 모자라는 수준이
아니었지만 그 분이 소개하는 음반들이 대개의 경우
내 기호와 잘 맞았던 이유가 컸으며 칭찬과 질책이 극명하게 갈리는
한고집할 거 같은(추정입니다) 그의 성향을 좋아 했었다
특히 그가 소개했던 싸이키델릭, 블루스/블루스록 등의 음반들은
항상 나의 위시 리스트였으며 지금도 눈에 띄면 대개 구입을 하는 편이다

본작두 그 분의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던 앨범 중 하나이다
60, 70년대에 많은 모던 블루스맨들이 앨범을 발표하여
재능을 뽐낸 시기라 볼 수도 잇을 거 같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뮤지션들을 보자면
모던 블루스의 기틀을 잡은(사실 가장 먼저 성공한으로 보는 게)
머디 워터스를 시작으로 소위 말하는 쓰리킹이라 불리우는
앨버트 킹, 비비 킹, 프레디 킹 등이 있을 것 같은데
블루스라는 비인기 장르인 탓에 소개된 뮤지션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극내 음악 시장의 인프라를 봤을 때 특정 장르(?)에만 몰리는
구매층을 보면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문제다

76년에 발표된 본작이 실제 녹음 된 시기는 71년도이다
5년간 빛을 보지 못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블루스 치고
너무 핫하다는 이유라고 알려져 있는데 -.-
지금 관점으로 보면 뭘 이정도가지고 그랬을까하는 마음도
들 수 있지만 그의 기타 플레이는 실제로 매우 핫하다
핫하다고 표현된 그의 록적인 성향이 강한 기타 플레이는
같은 왼손잡이이기도 하고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앨버트 킹과도 종종 비교가 되곤 하였다
유연한 살찐 나비와 날카로운 침을 지닌 벌 쯤? -.-
그러나 단지 록적인 성향이 강한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명명하기에
그의 슬로우 블루스 표현력 또한 너무나 아깝다

가장 구하기 쉬운 앨범 중 하나인 94년 작품인 Ain't Enough Comin' In 앨범도
강추하는 바이다
(이거다 앨버트 킹의 넘버로 잘 알려진 As The Years Go Passing By의 연주를 들으며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U & Me Blue - Nothing's Good Enough

군제대 후 복학을 하고 IQ2000 이후로 팬티엄이라 불리던 두번째 PC를
구입하였고 부팅후 프롬프트가 뜨지 않아 당황했었던
신기한 윈도우 95를 만끽하며 또는 블루 스크린때문에 쌍욕을 해대며
피씨 통신을 하던 때가 있었다

전용 단말기를 통해 하이텔이란 걸 한다는 말은 피씨 잡지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복학 후 과전산실에서 공유되던 누군가의
천리안/하이텔 아이디를 통해 유머 게시판에서 유행하던 시리즈를
보며 낄낄대던게 내가 접한 첫 통신의 기억이었다
그렇게 접했던 통신을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개인 피씨 선생님같은 역할을 해주던 동기 여학우의 추천으로
유니텔을 시작하게 되었다
(피씨 뿐만 아니라 어리버버한 복학생으로서 여러가지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별것도 아니지만 당시 그 친구에게
이메일 보내기 채팅 등을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유니텔 가입이 이루어지고(그 때는 전화를 직접해서
가입을 해야 했고 가입완료까지 일주일정도 소요가 되었던 걸로 기억된다
교내 공중전화로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가입 신청을 했던.....)
그 친구에게 이메일이란 것을 보내고 뿌듯해 하기도 했었다 -.-

통신을 시작하면서 동호회란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인터넷 카페같은 것으로 모습이 바뀐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통신을 하는 사람은 대개 자신의 취미에 맞는 동호회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본인 또한 록음악 관련 여러 동호회에 가입을 하고
오프라인 모임은 마치 피라미드에 발을 들이는 것처럼 생각을 해
오프라인 활동은 철저하게 배재한 온라인 활동만 주로 하였다
(말이 온라인 활동이지 지금의 트위터처럼 혼자말하고 놀기 -.- )
게시판 놀이로만으로도 충분히 흥분이 되었던 건
라디오나 잡지를 제외하면 록음악 관련 정보를 얻기 어려웠는데
동호회 게시판을 기웃 거리며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었다
94년4월 ~ 96년6월 까지 군복무로 인해 대략 2년 간의 정보 구멍이
생겼던 차에 당시 트랜드나 생소했던 국내 씬에 대한 정보는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본작의 주인공인 유앤미 블루는 관련 글을 올리는 분들마다
극찬을 쏟아 내곤 했다
그러나 1집인 본작과 마지막 앨범인 2집은 상업적 실패로 인해
그들의 존재를 알아 차렸을 때 앨범을 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작 본작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도 2000년대가 훌쩍 넘어
이루어졌던 재발매 덕이었다

이들의 앨범이 각광 받앗던 이유 중 하나는 (비록 망했지만)
한국 최초의 모던 록밴드라고 명명되던 것 처럼
얼터너티브란 용어가 강호를 지배하면서 사장 되어버린
모던 록이란 단어를 다시 생각나게 그것도 국내 밴드가
그런 모습을 보여준데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U2의 영향력이 많이 느껴진 음반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U2란 말도 있었음)
방준석과 이승렬이 펼쳐낸 세련됨은 당시 국내 가요계에선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인디씬만 하더라도 펑크 아니면 인더스트리얼 계열의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때니 소수의 매니아들에게 이들의 존재는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본작을 포함한 2집은 성공하지 못한 앨범이 되었지만
쉽게 볼수 없던 스타일의 흔적을 국내 대중음악사에 남긴 것은
분명 특별한 가치가 있었다 평가하고 싶다

댓글 4개:

  1. 송상희2/1/13 21:51

    원더형 노래 정말 잘하드라구요. ㅎㄷㄷㄷㄷ
    2004년 용필이 형 예당 공연과 함께 제 인생 최고의 공연을 꼽으라면 단연 원더형 내한공연 ㅎ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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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공연을 못봤을뿐이고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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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서준석3/1/13 17:25

    악기 연주 잘해봤자 보컬이 최고임 ㅋㅋ 보컬 좋은 팀에 있으면 덩달아서 명기타 리스트 되는일도 허다하고.... 연습으로 한계가 있는게 음악인것 같음 스티비 원더 보면 타고 난거 같어 ㅎㅎ
    유앤미 블루 당시에 몇곡 들어보고 그냥 그런 밴드려니 했는데... 요즘 명반으로 막 뽑히고 그러는거 보면 확실히 음악은 앨범 사서 전곡 들어보고 예기하는게 맞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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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응 말한대로 보컬이 잘하면 확실히 빛나는 거 같긴 함 근데 반대의 경우도 많잔어 ㅎㅎㅎ

      유앤미 블루는 발매 당시에는 매니아들 사이에서 꽤 화제가 되었을만해
      그런 음악하던 밴드가 거의 없었으니 근데 개인적으로 웹진 가슴네트워크 등이 선정했던
      100대 명반은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의 성향 등 주관적 요소도 강하고
      역사성을 많이 생각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좀 들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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